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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틈새를 증언하기―1980년대 말 5·18 광주항쟁 증언록 발간 양상과 증언의 윤리

Title
역사의 틈새를 증언하기―1980년대 말 5·18 광주항쟁 증언록 발간 양상과 증언의 윤리
Translated Title
Testimony for Dissensus: On the Documents Testifying about 5·18 in the Late 1980s
Authors
배하은
DGIST Authors
배하은
Issue Date
2021-08
Citation
역사비평(136), 422-461
Type
Article
Author Keywords
5·18May 18th Gwangju Uprisingtestimonydissensusmetanarrativeindividual memories.5.185.18광주항쟁증언윤리메타서사불화
ISSN
1227-3627
Abstract
1980년대 말에 이르러 비로소 5.18광주항쟁(이하 5.18)에 대한 말들은 오랜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이 시기 5.18 관련 다양한 증언과 수기 및 자료집이 광범위하게 생산·유통되기 시작한 현상의 배경에는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이후에도 5.18 진상 조사는 여전히 미진하다는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특별히 노태우의 대통령 당선 이후 이른바 ‘광주 치유 대책’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실행하기 위한 일환으로 결성한 ‘민주화합추진위원회(이하 민화위)’의 활동은 ‘국민적/민족적 총화’의 프레임 안에 5.18 담론을 배치시킴으로써 5.18 문제 해결을 위장하여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억압했다. 민화위는 “민족적 비극”이라는 수사를 동원하여 민족과 국민이라는 초월적 주체의 문제로 환원시키려는 전략을 취한다. 이러한 전략 속에서 5.18에 대한 ‘개인’들의 서로 다른 체험과 목격, 그리고 그에 대한 증언 수행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는 목적과 가치는 ‘민족’적 비극을 극복하고 ‘국민’적 총화로 나아간다는 공적인 프로젝트 속에서 희미해진다. 이와 같이 5.18이 다시 한번 억압을 겪는 가운데, 제도권 바깥에서 이루어진 5.18의 증언은 5.18의 민중항쟁 역사를 구성하는 일과 역사라는 집단적인 메타서사로 수렴되지 않는 5.18에 연관된 개개인의 차이와 불일치를 증언하는 작업을 동시에 수행한다. 특별히 개인별 증언 채록 또는 기록 작업은 단순히 5.18에 참여했던 개인들의 증언을 사료로 아카이빙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뿐만이 아니라, 민중항쟁이라는 대문자 역사로 수렴되지 않는, 국민과 민족에서 배제되거나 민중으로 재현/대표(represent)되지 못하는, 달리 말한다면 이데올로기에 의해 집단적 주체로 호명되지 못하는 5.18에 참여·관여한 개인들의 증언을 수행하는 윤리적 측면에서 사유될 수 있다. The truth about the May 18th Gwangju Uprising(“5·18”) was eventually liberated in the late 1980s━documents and nonfiction books for the testimony of “5·18” were extensively circulated. This sudden flooding of testimony resulted from the problem that the government’s investigation was delayed and not satisfactory. The Committee for Democracy and Reconciliation(known as “Minhwawe”), established after President Roh Taewoo’s election, was in a contradictory position of suppressing the discussion and activity for illuminating the truth. While under the suppression once again, the testimony of “5·18” struggled to construct the history of people’s democratic uprising and the individual memories not fully converged into the history. The work for establishing an official history of “5·18” stood against the discourse of the national unity developed by “Minhwawe.” On the other hand, the work for archiving people who had participated in, experienced, and sacrificed themselves for “5·18” stood for those who were not represented by the nation nor by “the people”, and gave them some voices for their own testimony.
URI
http://hdl.handle.net/20.500.11750/15740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10595466
DOI
10.38080/crh.2021.08.136.422
Publisher
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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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ool of Undergraduate Studies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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