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박노해 시와 사유, 활동의 변화에 대한 탐구는 그러한 변화에 작용하는 하나의 기원이자 배경으로 1970년대 민중론, 좀 더 좁혀서 민중신학적 사상과의 연관성에 주목할 것을 요청한다. 노동현장에 들어가 혁명가로 거듭나기 전의 박노해는 1970년대 사회 각 분야의 민중운동과 함께 형성 및 전개되며 흐름을 같이 하고 있었던 기독교 사회운동 및 민중신학과 조우했다. 박해받는 민중의 해방에 대한 민중신학적 사유와 실천이 ‘박노해’의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이라는 상징의 한 기원이었다. 한편 이른바 ‘사상 전향’ 이후인 1990년대 후반 박노해의 시에서 생태주의와 종교적 영성을 앞세우기 시작한 변화는 1970년대적인 민중을 재전유한 생활민중과 그들의 생태주의적 나눔의 삶을 발견하면서 비롯된다. 그러나 그의 시는 생활민중의 생태주의적 삶과 자연과의 관계를 충분히 구체적으로 담아내지 못하고, 미학적 시도나 사상적 탐구 또한 본격적으로 전개되지 못한다. 그의 시가 다만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사람, ‘나 개인’,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와 이어진 전체론적 인류만을 상정하는 데 그치는 것은, 사람들 개개인의 권리와 책임에 대한 의식에서 나아가 그것들에 정초한 공통의 집단적 행위로 조직화된 공적 세계로서의 사회 구조에 대한 인식과 상상력, 비전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의 생태주의적 시와 사유는 구체적인 실천가능성을 누락한 생태적 낭만주의로 경사된다.